<괴물들이 사는 나라>모리스 센닥 저
초등학교 때 였을 것이다.(몇학년이었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원밀히 말하면 국민학교)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사람들이 있곤 했다. 내 친구와 함께 3마리를 사서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친구는 망설임도 없이 병아리 한마리를 8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던졌다. 병아리가 날 수 있는 지 궁금해서 였다는 것이다. 병아리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그리고,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친구가 다른 한마리를 던질려는 것을 겨우겨우 말렸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가 잔인하고 매몰찬 성격이여서 병아리를 하늘로 던졌을까?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니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그는 동심이라고 불리는 야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끔 어린아이들이 하는 행동에 깜짝 놀라곤 한다. 고양이의 시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에 품고 있거나, 새총을 참새와 비둘기를 향해 발사하거나, 하는 행동 말이다. 곤충 채집을 하며, 장난처럼 잠자리의 날개를 찢어 버리는 행위 등. 그 아이들의 잔혹성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동심이라는 야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회화 교육을 받으며, 동심이라는 녀석을 떠나보낸다. 그 동심이라는 야수는 우리의 내면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른이 되는 순간 그 야수와 이별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당연한 일이다. 만약 30이 넘도록 야수를 키우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관습상 그를 제재하려 들 것이다.
야수와 이별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야수는 내 유년 시절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원동력이 지금도 남아있다면 긍정적인 힘을 불러일으킬수도 있을 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안의 야수와 이별을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다. 학교, 부모님 등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그 야수를 떠나보낸 것이다. 이제와서 그 야수를 불러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의 활기 넘치던 나의 모습을 잠시 생각해보면, 왠지 무엇이든 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에 빠진다. 그래서, 야수와의 이별이 아쉬운 것이다.
우리는 동심이라는 야수를 누구나 키워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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