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사회 시간에 한 편의 영화를 봤다. <그날이 오면> 미국과 소련의 핵 전쟁으로 인해 인류의 멸망을 담은 이야기였다. 영화의 결말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지만, 피폭으로 인해 사람이 한 순간에 파괴되는 장면은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네빌 슈트의 장편 소설 <해변에서>는 바로 이 영화의 원작이다. 1899년 런던에서 태어난 네빌슈트는 2차 세계대전에 비밀무기 무기 개발을 담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호주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이 소설은 네빌 슈트의 경험이 적극 반영되었다. 핵무기 개발과 전쟁, 그리고 소설의 배경은 호주이다.
핵전쟁으로 북반구 인류가 멸망하고 남반구로 내려오는 방사능에 의해 도시들이 하나둘 씩 파괴되고 있다. 호주에 피신해 있던 핵 잠수함 스콜피온은 호주 해군의 지휘 아래,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북으로 잠항을 시도한다. 하지만 남아있는 것은 결국 죽음 뿐이다.
예견된 죽음 앞에 놓인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현실을 인정하며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 둘 씩 떠나보낸다. 너무나 당연한 일상에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져 있지만, 자신들이 해야 할일을 한다.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끝는다. 약국에서 자살을 위한 독약을 처방하는 약사와 그것을 아무말없이 받아들고 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종말과 죽음의 모습을 이해하게 만든다.
결국 핵 잠수함 스콜피온의 임무는 실패로 끝나고, 전 인류는 죽음을 받아들인다. 죽음 뒤에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앨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의 마지막 구절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 구나,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에서 영감을 얻어 핵전쟁 후 방사능에 의해 멸망하는 인류의 모습을 섬세하고, 담담한 필체로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다 읽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것을 느꼈다. 잊을 수없는 공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이 마지막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다듬어 찾고
그러면서 애써 말을 피한다
부어오른 강가에 모여서
세상은 이렇게 끝나는 구나
세상은 이렇게 끝나는 구나
세상은 이렇게 끝나는 구나
쾅 소리가 아닌 훌쩍임과 함께
<텅 빈 사람들-T.S. 엘리엇>
세상의 종말은 아니지
우리의 종말이지
세상은 언제나처럼 계속 존재할테니까
다만 그 속에 우리가 없을 뿐이지
우리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거야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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