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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LOG / THOUGHT

텅 빈 사람들(T.S. 엘리엣)

 

 

 

 

Hollow Men. T.S. Eilot

 

T.S. 엘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은 네빌 슈트의 소설 'On the Beach(해변에서)'를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핵전쟁 이후의 모든 사람들이 예견된 죽음을 맞이하는 이 소설은 바로 '텅 빈 사람들'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쓰여진 작품이다. 묵시록적인 분위기의 이 작품은 ''On the Beach(해변에서)'뿐만이 아니라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도 등장한다. 그리고 원안 소설 '어둠의 심연'에서도 인용구로 사용이 되었다. '텅 빈 사람들'은 삶에 대한 짗은 허무를 담은 시이기도 하지만, 그 일면에는 작은 희망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해변에서', '지옥의 묵시록', 그리고 '어둠의 심연' 은 모두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전쟁의 비극 뒤에는 희망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묘사되곤 한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의 기본 정서는 비극이 깔려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T.S. 앨리엣은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며, 뮤지컬 캣츠의 원작자이기도 하다.우리나라에는 당연히 캣츠의 극작가로 알려져 있다. '황무지'라는 시 또한 국내에서 유명하다. 1888년에 태어나 노벨상을 받던 해(1948년)에 숨을 거뒀다.

 

이 작품을 읽고나면 이렇다. 허무하고, 하무하되, 허무하도다. 

 

1.

우리는 텅 빈 사람들 
우리는 박제된 사람들
모두 기대고 있으며
머릿속은 짚으로 가득 찼다
슬프다, 우리의 메마른 음성은
우리가 함께 속삭일 때조차
마른 풀잎을 스치는 바람처럼 건조한 지하실
깨진 유리 위를 달리는 쥐들의 발자국처럼

소리도 의미도 없다 

 

형체 없는 모양, 색깔 없는 그림자,
마비된 힘, 움직임 없는 몸짓


죽음의 다른 왕국을 부릅뜬 눈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우리를 기억한다

잃어버린 난폭한 영혼들이 아닌
그저 텅빈 사람들로서 
박제된 인간으로서

 


2.

꿈에서도 감히 마주한 적 없는 눈길들
죽음의 몽유 왕국에서
그들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저기, 그 눈(目)들이
부러진 기둥의 햇살 중에 있고
흔들리는 나무에 있다
그리고 목소리들,
저무는 별빛보다
희미하고 장중한
바람의 노래 속에 깃든 음성들


내가 저 죽음의 꿈 속 왕국으로부터
가까이 있지 않게 하도록
또한 쥐의 겉옷, 까마귀 거죽,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들판의 십자가 말뚝처럼
치밀한 변장을 하도록
더 가까워지지 않기를

 

황혼의 왕국에서 맞는
마지막 대면은 아니길

 

 

3.

이곳은 죽음의 땅
선인장의 땅
여기서 돌의 형상들이 일어나
희미해지는 별의 명멸 아래
죽은 이들의 손에서
탄원을 받는다

 

이곳은 죽음의 다른 왕국과
같은 곳인가
홀로 일어나
우리가 자비로움에
떨고 있을 시간
입맞춤하는 입술은
기도자를 부서진 돌로 바꾼다

 

 

4.

눈(目)들이 부재하는 곳
이곳엔 눈들이 없다
여기 죽어가는 별들의 계곡
이 텅 빈 계곡에
우리의 잃어버린 왕국들의 부서진 턱뼈

 

이 마지막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듬어 찾고

그러면서도 애써 말은 피한다.

부어오른 강가에 모여


볼 수 없으나
눈들은 다시 나타난다
영속하는 별처럼
사멸의 황혼 왕국에 피는
다엽 장미처럼
텅 빈 인간들의
유일한 희망

 

 

5.

여기서 우린 선인장 주위를 맴돈다
가시로 덮인 선인장
아침 다섯 시면
우리는 선인장 주위를 돈다


이상과 현실 사이
동작과 행동 사이에
그늘이 드리운다

 

왕국은 그대들의 것

 

관념과 창조 사이
감정과 반응 사이에
그림자가 진다

 
인생은 길다


욕망과 충동 사이
발생능(發生能)과 존재 사이
본질과 그에서 파생된 것들 사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왕국은 그대들의 것


그대의 삶은 그대의 것


세상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가 아닌 훌적임과 함께